The Byantine Empire. 동로마제국에 대해 알아보자 ! 2편.제국 중흥의 꿈!
사실 저녁에 쓰거나 내일 쓸 예정이엿는데
시간 질질끌면서 간잽이 짓이 재미없다는 걸 알기에
바로 써보기로 했어.
글이 난해하다는 얘기가 많이 있엇어
나 조차도 글을 쓰면서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의
꼽사리와 죽었다가 나왔다가 정신이 없었어. ㅠㅠ
하지만 지금부터 알아볼 파트에서는
1인황제로 제국의 외부상황을 많이 다룰테니
재미있을거야!
로마제국 분할 강역.jpg
위의 사진을 보면 얼마나 서로마제국의 상황이 안습인지 알 수 있다.
먼저 번 글은 테오도시우스1세가 395년에 죽으면서
자신의 두 아들이였던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에게 제국을 양분해주었다고 했었지.
그 다음의 얘기를 알아보자.
호노리우스가 맡게되는 서로마는 건너뛰고 동로마로 바로들어간다 이기!
테오도시우스1세의 자식 아르카디우스.jpg
게임 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혹시 아틸라 토탈워를 해본 게이들은 알거야.
게임에서는 그나마 서로마의 호노리우스보다 사람인 듯이 묘사를 했는데 정반대였어.
묘사에 따르면 키도 작고 까만 피부에 행동하는것도 복지카드를
소유한 사람 같이 굼떳다고 해. 역시나 카드의 위력인지 성격도 유약하고 지성도 보잘것없었다고하지.
자신의 동생 호노리우스가 유능한장군 스틸리코와 함께 게르만유민들과 맞서싸우는동안
이 무능한 황제는 신하들의 영향력아래에서 놀아났고
서고트족이 반란을 일으키고 영토를 유린하는 동안에도 아무런 대책도 못세웠다고해.
호노리우스.jpg
호노리우스와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있어서 소개할게.
닭을 돌보시는 대단한 호노리우스.jpg
닭을 기르는 취미가 있었대. 그 중 가장 사랑하는 닭에게 로마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알라리크가 로마 성문을 뚫고 들어오자, 전령이 로마가 작살났다고 전했다고 해.
이에 호노리우스가 울면서 '내 닭 로마가 죽었다니!' 라고하자 도시로마의 함락소식을 전하고
이에 호노리우스가 안색이 바뀌면서 '닭 얘긴줄 알앗잖아 홍어새끼야'라는 말을 쏟았다고해.
(틀딱틀딱!)
주의! 이 글을 정게할배들이 싫어합니다.!
위의 닭치기 소년 호노리우스보다도 무능하다고 비견 될 정도면 어느정돈지 예상이가지?
결국 408년 약 13년 동안의 통치후에 자신의 7살짜리 아들 테오도시우스2세에게 재위를 넘기고
죽어버렸다고 해.
세줄요약
1.사실상
2.아르카디우스는
3.명나라 F4수준
그리고 그의 아들로 7살에 재위에오른 테오도시우스(재위 408~450)
그가 세운 테오도시우스 2중 성벽.jpg
복지카드를 늘 주머니에 품고다녔던 그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꽤나 괜찮았던 모양이야.
난공불락의 요새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세우고, 로마법을 집대성한
테오도시우스 법전을 만드는 등 온화환 성품에 학문도 좋아했다고 해.
그리고 황제는 낙마사고로 450년에 죽게되고
후임황제 마르키아누스가 재위하게 되지.
마르키아누 동전주화.jpg
몇 가지 재위기간 중에 일을 설명하면
당시 전임 황제가 훈족의 아틸라에게 바치기로한 연례공물을
폐지해버렷어.
다행히 훈족은 서로마제국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위협을 가하지 못하지.
그리고 단성론을 둘러싼 성부, 성자의 관계 논란을 451년 칼게돈 공의회를 통해서
(여기서부터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하나의 본성으로 가르치려드는 자 들을 이단으로 찍어버리지)
논란을 끈내려고하지.
그리고 시리아나 이집트등 단성론을 따르던 많은 주교들은 돌아서게되지.
재위기간은 450~ 457년으로 약 7년을 황제자리에 있었어.
하지만 독신을 맹세한 황후 풀케리아와의 사이에선
(네 다음 성모마리아 컨셉)
후계자 없엇으므로 궁전의 영향력이 컸던 막후의실력자 아스파르는 레오1세로
지명하면서 새로운 레오왕조가 개창하게되지.
세줄요약
1.테오도시우는 성벽을 쌓고
2.마르키아누는 제국의 국고상황을 나아지게하고
3.중흥에 힘을 가하다.
두눈을 부릅뜬 레오1세.jpg (재위기간 457년~474년)
막후 실력자 아스파르가 왜 한낱집사였던 레오1세를
추대햇을까?
아무래도 1년황제하고죽기vs그냥살기 중에 ㄷㅎ! 를 외쳤던 게이같아
하지만 레오는 꼭두각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였고,
게르만족 군부를 대신해서 이사우리아 출신의 제논을 등용해서 아스파르를 견제하였어.
그리고 468년 서로마 황제 안테미우스와 연합해서 북아프리카의 반달왕국의 가이세리크를 공격하기 시작했지.
477년 강역지도이긴한데 468년과 비슷해서 붙여넣음.jpg
원정군 규모는 당시 전임 황제 마르키아누스가 쌓아논 국고를 탈탈털어서
엄청난 규모로 진행하는데.
총비용 - 13만 리브라 (50,000kg 상당)의 황금
함대 - 1,113척
병력 - 약 10만명
당시 이정도 수준의 원정을 준비할 수 있었던 나라는 얼마 없었지.
순조로왔던 초반에는 사르데냐에서 반달족을 격파하고
카르타고 남동쪽 공략을 들어가.
하지만 가이세리크의 계략에 의해서 화공에 의해 모든 함대를 불태워먹게되지.
원정대장이였던 레오의 처남 바실리스쿠스는 목숨을 구걸하고,
황후의 간청으로 겨우겨우 레오의 진노를 풀게되지.
이후 이 피해는 거의 30년 동안 동로마 제국을 괴롭히게 되는데..
세줄요약
1.레오는 집사출신!
2.반달족원정떠낫다가
3.개말아막노!
여기서 한가지를 짚고 넘어가보자면,
왜 로마와 페르시아간의 충돌이 없지? 뭐 이렇게 재미없노 페르시아 써놔라 게이야
하는 게이들이 있을거같아서 적어볼게
혹시 1편의 글을 본 게이들은 요비아누스의 평화조약 기억나?
이후 테오도시우1세도 페르시아의 왕 샤푸르3세와 항구적인 평화조약을 맺게되지.
또한 페르시아도 움직일수 없었던 것은, 당시 짐승남 훈족과, 백훈, 즉 에프탈의
침공으로 진격할 여력이 없었어.
똥송합니다.jpg (by 에프탈)
로마도 한방, 페르시아도 한방.jpg (by "JUST"백훈족 부장판사)
그리고 위에 적힌 반달원정에서 날려먹은 피해로인해,
페르시아의 A.D500년 이후의 침공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되버려.
요약
1.페르시아도
2.유목민때문에
3.바빳다
그 이후부터 즉 474년부터 491년 아나스타시우스1세의 재위 전까지
비잔티움 제국은 혼란기를 거치게 되.
레오 1세의 사후, 후계자인 레오 2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권력의 공백이 생기게 되고,
이에 따라 견제를 위해 포섭해놓은 제논과 말아쳐먹은 바실리스쿠스의
대결이 불가피했기 때문이야.
이나스타시우스1세의 주화.JPG
491년에 재위에 오른 디라키움 출신의 이 60대 통치자는 나이에서 오는 연륜으로
국고를 엄청나게 증가시키지.
제논의 동생이 일으킨 내전도 훌륭히 막아내었으나,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페르시아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어....
맛집탐방에 나선 사산조 페르시아의 블로거들.JPG
아나스타시우스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때에
당시 페르시아의 왕이였던 카바드 1세는 무력위협으로 조공을 얻기위해 침공했어.
502년에 테도시오폴리스를 기습점령하고
아미다를 공격하는데
위에서 45번이 테오도시오폴리스.JPG
요새도시의 특성으로 점령이 3개월이나 늦춰지게 되.
503년 페르시아가 오스로에네를 침공해서 에데사를 공략하는동안,
다시금 로마는 아미다를 공략하고, 504년 함락직후에는
캅카스에서 다시 찾아온 훈족블로거들로 인해 강화조약을 맺게되고
505년에 아나스타시우스 황제는 메소포타미아 도시 다라에
요새를 짓도록 했어.
근 100년 간의 안정기 이후 첫 충돌은 꽤 싱겁게 끈나버린듯 하나
수 십년 전에 이들이 맺은 조약에는 국경지대에
요새를 짓는 일 이 금지되 있었기에,
더 커더란 긴장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애초에 항구적 평화조약을 깨고 들어온 블로거는 뭔짓을 한건지 생각해봐야해.
그리고 다라요새는 전쟁클리셰를 만들게되지..
세줄요약
1.이나스타시우스1세는 청렴했다.
2. 평화조약을 깬 페르시아의선방
3. 훌륭히받아쳣지만 다음 전쟁의 클리셰를 남기다.
약 491년 부터 518년의 재위 후
아나스타시우스는 제위를 조카에게 물려주려했엇으나
상태가 이상한지라 결국 경호대장 유스티누스에게 재위를 물려주었다네.
유스티누스1세의 주화.JPG
역시 낮은 신분에서 고령의 나이에 황제가 된
개천의 용난 케이스인 유스티누스 1세.
전임 황제와 마찬가지로 건실한 통치로
바로 다음 계승자인 대제 '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게
중흥의 힘을 건네주게 되지.
마케도니아지역의 농부출신으로 야만족침입을 피해
도망간 곳이 바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였고,
군대에 입대하게 되어 재능하나로 장군 까지 가게 돼.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나스타시우스 말년, 세 조카들중 한명을 제위에 앉히기 위해
궁정으로 불러들여 방석하나에 황제라는 글씨를 숨겨놓았나봐.
하지만 조카들중 아무도 찾지 못하고, 결국 다음날 가장 먼저 침실로 들어오는 자를 황제로 지명하기로 결정하는데,
마침 그 전날 조상님이 꿈에나온 유스티누스가 방에 들어가 황제가 되었다고 해
왕후장상영유종호라더니, 어째 유럽의 역사는 세습보다는
현명한 자에게 물려주는 좋은 관례를 로마초대황제들이 쌓은 이후로
이런 재위의 세습을 즐겨하는거 같아.
하지만 태생이 군인인 자신을 대신해 통치할 사람을 뽑게 되는데
그게바로 훗날의 대제 유스티아누스1세였어.
통치 후반기에 이르러 서로마를 깔끔히 지도에서 없애버린 동고트와
맛집탐방의 1인자 자리를 노리는 페르시아제국의 위협에 직면하였고,
526년 자신의 조카를 공동황제로 지명하고
드디어 오랜 전임자들의 꿈이였던 중흥을 이룰 대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황위에 오르지.
2016/01/13 - [분류 전체보기] - (역사/세계사) 제국 중흥과 전신[戰神] 1부
2016/01/13 - [분류 전체보기] - LEGACY OF ROME. 동로마제국에 대해 알아보자 ! 1편.분열과정
세줄요약.
1. 조상님꾼 유스티아누스 1세
2. 황제즉위하고
3.후임 '대제' 유스티니아누스1세가 등장하다